넌 주량이 어떻게 돼?

주변인들을 알아갈 때, 또는 회식 자리가 잡혔을 때 사람들은 다시금 위의 질문을 서로에게 하곤한다.

'아 제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 인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어김없이 '에이 그럼 소주 3병은 마시겠네'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한민국의 사회생활에서 술자리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술 잘 마시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술 잘 마시는 것을 들켜버린 사람들은 회식자리마다 술을 들이부어야하기에 '술 못마시는 사람'이라고 인식된 이들을 부러워한다.

난 원래 회식자리를 즐겼다.

타고난 먹성과 체격으로 회식자리는 나에게 있어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였다. 평소 무한리필 고기식당과 쿠우쿠우만 다니던 내가 투플러스 한우와 최상급 호텔뷔폐를 가게 해준 것도 바로 회식이였다. 회식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함께 앉을 사람을 찾아 4자리를 맞춰서 착석하고 음식이 나오면 양껏 음식을 즐겼고 평소에 궁금했던 업무지식을 상사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음식과 지식을 모두 챙기곤 했다. 하지만..

회식을 늦게까지 했다고 출근시간이 늦춰지진 않는다.

자정이 지나 집에 도착하여 대충 세수와 양치만 하고 자리에 누워도 잘 수 있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회식 다음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알콜은 차고 수분은 빠진 초췌해진 얼굴로 출근도장을 찍는다. 나이를 먹어가니, 술을 흠뻑 마신 다음날엔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려면 로딩이 있다. 가령 보고서를 작성해야지라고 생각하고 1분간 마우스로 뭘 눌러야할지 고민한다. 그러고 나서 결심한다. 다음 회식 때는 차를 이용하여 술을 마시지 않으리.

술을 안먹는 자에게 회식자리는 고역이다.

분명히 처음엔 좋았다. 음료와 물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또 같은 테이블의 인원과 이야기하고.. 분명히 즐겁다. 단, 식사가 끝나는 순간 고역이 시작된다. 식사가 끝나갈 때가 되어가면 술을 마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와있고 주류자들의 텐션과 '비'주류자의 텐션에는 따라잡을 수 없는 간극이 시작된다. 매일 보는 부서 사람들과 식사시간 정도의 이야기보다 더 많이 할 이야기는 사실 없다.. 이따금 취기 오른 동료들의 행동에 웃음이 나긴 하지만 주류자들의 모임에 비주류자는 낄수도 도망칠 수도 없이 테이블에 덩그라니 앉아있게 된다. 심지어 흡연자들이 단체로 밖으로 나가게 되면 테이블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핸드폰을 만지게 된다.

그래도 술은 안마셨으니 괜찮지 않아?

아니, 전혀. 차라리 술을 마실 걸 그랬다. 회식동안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회식자리의 분위기 호응에 기가 다 빠져버린다. 또 술에 취한 사람들의 파티가 끝나고 해산하게 될 때즘 술을 마시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 둘 부탁이 들어오게 된다. 계산, 태워주기, 뒷정리 등 여러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데 술만 마시지 않았을 뿐 피로도와 집으로의 복귀시간은 술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그래 그냥 회식자리를 가지말자.

이제는 회식자리의 삼겹살보다 집에서의 간장계란밥이 더 좋아진다. 회식.. 코로나 시대에 발 맞춰 회식말고 각자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을 회사차원에서 발급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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