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 뛰지말라는 아빠의 목소리에도 꺄르륵
거리며 놀이공원의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뛰어다니다 앞으로 엎어져 바닥에 드러누워 엉엉 울던 기억, 그리고 그런 날 들쳐엎고 인근 응급실로 뛰어 간 아빠 등에 엎혔던 기억.
2002년 여름, 붉은 티셔츠를 입은 채 에어컨도 없고, 치킨도 맥주도 없었지만 부모님과 형과 거실 티비 앞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월드컵 경기를 함께 봤던 추억.
2004년 가을 운동회, 한껏 꾸민 엄마가 양손가득 싸온 음식들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기억.
그 당시 부모님의 젊고 빛났던 얼굴들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어제밤, 새로 시직한 사업에 일할거리가 많아 고생 중이신 우리 아버지가 고된 노동 후 잠이 드셨을 때, 나는 아버지의 염색된 머리 아래로 뿌리쪽의 머리카락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새하얀 모습을 하고있는 걸 보았다.
자식인 내가 장성할수록 부모님의 허리는 굽어진다는 것을 알고있었음에도,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나이듦이 느껴져왔음에도, 그럼에도 항상 검정 염색을 단정히 하시는 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카락들은 처음 보았기에 아버지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으며 뿌리부터 검게 난 머리카락은 없는지 오랫동안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주말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는 시외버스 안, 출발 전 허리가 굽어 머리를 치켜들어야만 앞을 볼 수 있는 어르신 한 분이 버스입구의 손잡이를 잡으며 힘겹게 오르신다. 그리고 그 뒤에 짐을 들고 따라타는 손주 한 명. 손주는 짐을 챙겨드리고 인사 후 버스에서 다시 내린다.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어르신 한 분을 보니 왠지 그리 멀지않은 미래에 있을 것 같은 부모님 모습이 겹쳐보여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분명 저 어르신은 버스에 오르기 전 자식, 손주와 나 혼자 갈게, 데려다 드릴게로 한참을 실랑이했으리라.
항상 아래로 더 줄 것이 없는지 고민하시고 내어주시는 우리 엄마아빠.
함께 밥먹고, 자고, 걷고, 활동하고, 웃고.. 그 시간들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큰 목소리가 오가며 싸우는 시간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있음에 감사하다.
부모님이 계신 곳과 멀리 떨어진 내 자리로 돌아가며 내 인생 통틀어 그리 많지않을 이 만남을 더 자주 하리라, 찾아뵈면 더 즐겁게 해드릴 것이라 다짐하고 또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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